춥고 맑은 겨울날, 난방 안 한 파시브하우스의 실내 기온

월요일인 12월 14일부터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올 겨울 첫 맹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이번 주 내내 추위와 벗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제가 사는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가 아직 난방을 하지 않고 있어서[1] 춥고 맑은 겨울날 난방을 하지 않는 파시브하우스의 실내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어떤 수준인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만들어졌습니다. 해서 요 며칠 사이의 기록을 그래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많이 춥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흐렸던 13일 일요일 해 뜰 무렵부터 쨍하게 맑고 추운 14일 월요일과 15일 화요일, 그리고 16일 수요일 해뜰 무렵까지의 기록입니다.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의 실내외 기온과 실내 CO2 농도 (2020. 12. 13. ~ 12. 16.)

실외 기온과 실내 기온, 그리고 햇볕의 관계

파시브하우스의 실내 기온은 바깥 기온보다는 햇볕에 더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난방을 하지 않을 때 이 관계는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종일 흐렸던 13일 일요일에는 실내 기온이 최고 20 ℃ 정도까지밖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낮에 축적된 열이 부족해서 실외 기온이 영하 8.2 ℃까지 내려갔던 14일 월요일 아침에는 1층 17.3 ℃, 2층 17.7 ℃까지 실내 기온이 낮아졌습니다.[2] 하지만 하루 종일 맑았던 14일과 15일에는 바깥이 종일 영하 3~4도 이하였음에도 1층의 실내 기온이 23~24도까지 올랐고 최저 기온은 1, 2층 각각 18.1 ℃, 18.4 ℃로 일요일보다 높았습니다. 바깥의 기온이 15일 아침 영하 11.7 ℃, 16일 아침 영하 14.8 ℃까지 떨어졌는데도 말이죠.

실내의 열을 잘 잃지 않고 태양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파시브하우스의 겨울철은 바깥 기온보다는 햇볕에 더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실외 기온을 나타내는 남색 선이 날을 거듭할수록 점차 아래로 향하고 있을 때 실내 기온을 나타내는 주황색(1층)과 빨강색(2층) 선은 14일, 15일 사이 경향성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겨울철 실내 공기질

겨울철은 창을 열어 환기를 할 수 없는 계절이기 때문에 비교적 기밀 성능이 덜 나쁜 집은 공기질이 많이 악화됩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실내 열을 거의 잃지 않는 수준 높은 열회수환기를 하므로 겨울철에도 늘 좋은 공기질을 유지합니다. 특히 창을 열 수 없는 겨울철 잠 잘 때의 공기질이 여느 집과 다릅니다. 위 그래프에 산 모양으로 표시된 이산화탄소 농도[3]를 보시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 위의 측정 기간에도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는 창을 열지 않았지만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대체로 1000 ppm 미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4] 해나는 동안 태양광으로 물 데우고, 청소하고, 요리한다고 분주했던 14일과 15일 낮에는 최대 1203 ppm까지 오르는 둥 다소 높았지만 열회수환기를 하지 않는 집이라면 이 수준만 해도 겨울철 최상급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보다 눈여겨 볼 것은 자정부터 아침까지의 공기질입니다. 환기를 하지 않는 집에서는 잠을 자는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솟아 오릅니다. 공기가 정체된 가운데 계속 호흡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에서는 자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집니다. 자는 동안 인체의 호흡량이 줄어 이산화탄소 배출이 주는 반면 환기는 계속되는 까닭입니다.

파시브하우스가 보여주는 문명 전환의 힌트

기후위기, 기후비상사태는 자칫 20세기까지 인류가 어렵사리 이룬 것을 다 망가뜨릴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화석연료문명이 성취했던 ‘삶의 질’이 화석연료시대의 종말과 함께 좌초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넘쳐나는 에너지와 물자가 삶의 질의 필수 요건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얻어온 지식과 지혜를 현명하게 종합하면 내 앞에 차례진 햇볕만 가지고도 인류는 얼마든지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핵발전에 목을 매는 사람들, 더 나아가 핵융합까지 해보려는 사람들은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물자, 더 많은 자원이야말로 문명의 핵심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지만 파시브기술의 총아인 파시브하우스는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일 따름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코 끝이 시리는 맑고 추운 12월 겨울날, 파시브하우스 안에 들어앉아 한 생각 해보았습니다.


[주석]

[1]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는 보통 12월 하순이 되기 전에는 난방을 하지 않습니다. 겨울철 난방 부문에 특별히 신경을 쓴 파시브하우스로서 파시브하우스의 연간 난방에너지요구량 기준이 제곱미터당 15 kWh 인 데에 반해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의 연간 난방에너지요구량은 제곱미터당 7~8 kWh 수준입니다. 파시브하우스라도 성능과 특성에 차이가 나게 마련인데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는 단열이 아주 많이 되어 있고 창의 크기가 커서 겨울철에 특히 유리하고 여름철에는 비교적 불리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 본문으로)

[2] 양평 에너지독립 파시브하우스의 1층은 주생활공간, 2층은 침실입니다. 1층의 열이 2층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보통 2층의 기온이 더 높고, 활동은 주로 1층에서 이루어져 1층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습니다. 파시브하우스는 창의 실내 표면 온도가 높기 때문에 실내 기온이 낮아도 보통의 집보다는 덜 춥게 느껴지지만 파시브하우스라도 18 ℃ 이하는 꽤 썰렁하게 느껴지는 기온입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껴입으면 지낼만하기도 하여 13일 밤 난방은 하지 않았습니다. 잠을 잘 때에는 침대에 약하게 전기담요를 켜고 잤습니다. (→ 본문으로)

[3] 요사이 실내 미세먼지 농도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실내의 공기질은 한 두가지 요소만 보아서는 안 되고 여러 가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종합적인 공기질을 대표하는 지표가 바로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입니다. 이산화탄소 그 자체의 농도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신선한 공기가 얼마나 잘 공급되고 오염된 공기가 얼마나 잘 배출되는지를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잘 알려주기 때문에 주로 이것을 보고 실내공기질을 판단하게 됩니다. (→ 본문으로)

[4] 보통 좋은 공기질이라 하면 바깥 공기보다 실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400~600 ppm 이상을 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바깥 공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공기 좋은 곳은 350 ppm에서부터 도심의 550ppm 정도까지이기 때문에 실내는 800 ppm 이하면 꽤 좋다 할 수 있고, 1000 ppm 이하도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통상 주택에서는 1500 ppm, 공용 공간이라면 2000 ppm 정도가 환기를 권하는 수준입니다.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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