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을 위한 개념비평] 그것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이 아니다

최우석 (녹색아카데미/파시브기술연구소)


에너지전환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에는 ‘개념’도 있습니다. 우리는 개념을 기초로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기 때문에 개념을 잘 정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잘 알려진 의미 있는 개념을 가져와서 알맹이는 버리고 권위만 취하려다가 개념을 통째로 망가뜨려버리는 일이 잦습니다. 분식 회계에 비견할만한 개념 분식(粉飾), 쉬운 말로 ‘개념 분칠’이 그것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새로운 전환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할텐데 분칠된 개념들을 찾아 고발하는 ‘개념비평’ 역시 긴요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에너지전환에 걸림돌이 되는 개념들을 찾아 비평하는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숫자 0에 대한 새로운 이론

숫자 0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0은 하나가 아니다. 다섯 개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가계의 재정을 생각해보자. 수입과 지출을 따져서 흑자는 못보더라도 최소한 적자를 0으로 만들고 싶다. 지출하는 만큼의 수입을 얻으면 적자는 0이 된다. 수입이 지출 대비 100%나 그 이상인 경우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것이 바로 0이다. 다른 0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새 이론에서 이것은 1등급 0이다. 다른 0도 있다는 것이다. 지출의 80% 수준까지 수입을 거두면  -20%만큼 적자가 나지만 이것도 0이라고 본다. 다만 2등급 0이다. -40% 수준까지는 3등급 0, -60% 수준까지는 4등급 0, -80% 수준까지는 5등급 0이다. 이것이 0의 5등급 이론이다. 적자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경우 이 이론을 적용한 뒤에 지출의 20%까지만 수입을 만들면 적자 제로를 선언할 수 있다. 빚을 낸 후 원금의 20%까지만 갚고 이 이론을 적용하면 빚도 0이 된다.

세상의 모든 적자 가정과 빚꾸러기들에게 찬란한 빛을 주는 이 이론은 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에서 나왔다.

국토교통부 제로에너지건축 정책은 ‘탄소중립 하는 척하기’

지난 연말인 2021년 12월 23일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1]. 2050 탄소중립선언,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등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건물과 교통 분야 등의 계획이 담겨있는데 이 가운데 건물 분야에서는 공동주택의 제로에너지건축 조기 의무화가 주목할 만한 내용입니다. 기존의 계획에 따르면 2020년부터 1,000 m² 이상의 공공 건축물 의무화가 시작된 데에 이어 1,000 m² 이상의 민간건물은 2025년부터, 500 m² 이상의 민간건물은 2030년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주택에는 이를 더 빨리 적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조치로 공공분양·임대는 2023년부터, 민간분양·임대(30세대 이상)는 2024년부터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짓게 됩니다.

적지 않은 건축계 인사들이 제로에너지건축 조기 의무화 정책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나름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억지로나마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고 이를 위해서 정책을 수정한 일은 그 자체로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의 제로에너지건축 정책에 도저히 박수는 칠 수가 없습니다. 잘못 끼운 첫단추를 돌아보지 않는 한 여전히 ‘탄소중립 하는 척하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토교통부는 잘못된 개념 위에 성을 쌓고 있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이란? 상식 대 대한민국의 법령

‘제로에너지건축물’이란 어떤 건축물을 가리키는 개념일까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에너지가 전혀 들지 않는 건축물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상식적인 이해죠. 학술적인 정의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제로에너지’를 어떻게 셈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들어가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기 때문에 직관적으로는 명쾌한 듯 하지만 실제로는 꽤나 모호한 개념입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범위에서 제로에너지건축물의 개념 정의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것이지 소위 ‘제로’에 대한 이해까지 모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률에 정의된 바는 어떠할까요?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2]의 제2조(정의) 4항에서 아래와 같이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이란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을 말한다. (2016. 1. 19. 일부개정시 신설, 2017. 1. 20. 시행)

재미있게도 제로에너지건축물의 정의에는 ‘제로’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뜻하는 바를 한정하기 어려운 ‘최소화’라는 규정만 있어서 사실상 융통성의 범위가 정해져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국제적인 규정과 달리 재생가능에너지만이 아닌 ‘신에너지’까지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재생에너지법이라고 줄여 부르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탓이니 별도로 따져보아야겠죠.

왜 이렇게 정의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등급” 때문입니다.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2]의 제17조(건축물의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한 국토교통부고시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기준>[3]은 아래의 표와 같이 제로에너지건축물을 다섯 개의 등급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에너지자립률’은 ‘단위면적당 1차에너지소비량’ 대비 ‘단위면적당 1차에너생산량’의 비율을 말합니다[4]. 에너지자립률 규정을 이루는 하위 개념의 정의로 들어가면 따질 것들이 많지만 상식선에서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소비량 대비 건물이 직간접적으로 얻어낸 재생가능에너지생산량의 비율로 이해해도 일단 지금 논의 맥락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이 인증등급의 내용은 글 맨 앞의 ‘숫자 0에 대한 새 이론’이라고 적어본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립률이 20%만 되어도 제로에너지건축물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약간만(20% 이상)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을 하면 최대 80%까지의 에너지소비량을 화석연료와 핵발전 전력으로 채워도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예 없으면 모르되 조금이라도 건물 몫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설비가 달렸거나 확보되면 제로에너지건축물로 보는 셈입니다. 이런 손쉬운 허울을 위해서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은 거의 한계가 없을 만큼 융통성이 큰 정의를 도입했다 보입니다.

국토교통부의 인증등급 가운데에서 제로에너지건축물에 대한 상식에 부합하는 것은 1등급 뿐입니다. 그런데도 에너지자립률이 20% 이상인 건물까지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주는 제도를 만든 이유는 분명합니다.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건설업계가 하고 싶지 않은 제로에너지건축을 실질적으로는 먼 훗날의 일로 미뤄두되 뭐라도 하고 있는 양 하는 척만하기 위함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고 있었으니 굉장히 성공적인 ‘척하기’였다 할 수 있겠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현황 – 에너지자립률 100% 이상은 6%, 80% 이상까지 셈해도 단 10%

인증제도가 시행된 뒤 어떤 건축물들이 제로에너지건축물로 인증을 받았는지 보면 이 개념과 제도가 어째서 ‘하는 척하기’에 지나지 않는지 잘 드러납니다. 제도가 시행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현황을 아래의 표 및 그림들과 같이 분석해 보았습니다[5][6].

상식적인 제로에너지건축물에 해당하는 1등급의 비중은 6%에 지나지 않고, 거기에 근접하는 2등급까지 합해도 10% 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면 5등급은 60%, 4등급은 2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11개 인증 건물의 등급별 평균 에너지자립률은 1등급이 125%, 2등급 83%, 3등급 69%, 4등급 48%, 5등급 29%였고, 전체 평균 에너지자립률은 44%에 그쳤습니다. 에너지자립률이 사실상 50%에 미치지 못하는 건물이 소위 인증 받은 ‘제로에너지건축물’의 83%를 이룬다는 사실은 현재의 개념 및 제도가 눈속임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제도에서는 인허가 단계에서 서류만으로 예비인증을 받을 수 있고, 준공 시점에서는 준공 서류에 더하여 현장평가를 거쳐 본인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건물을 짓기 전의 예비인증 현황까지 들여다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제도 시행 이후 2021년까지 제로에너지건축물 예비인증을 받은 1580개 가운데 5등급이 68% (평균 에너지자립률 28.5%), 4등급이 20.9% (평균 에너지자립률 47.4%)로 실질적으로 에너지자립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는 건물의 비중이 89%에 달합니다[7].

이러한 현황이 말해주는 바는 당연하겠지만 현재의 인증제도는 상식에 부합하는 제로에너지건축으로 사람들을 이끌지 못하고 제로에너지건축물의 허울만 뒤집어 쓰는 데로 건축주와 설계사, 시공사를 유인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인증에 비해 월등히 숫자가 많은 예비인증 건물 가운데 1등급은 전체의 2%에 그쳤고, 2등급까지 합해도 4%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약간의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설비 확보로 용적률 등 제로에너지건축물 혜택만 받아가려 할 뿐입니다. 제도가 탄소중립의 기반이 되기보다 합법적인 눈속임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글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지만 이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예비인증을 받은 건물까지 포함하여 모두 셈해보면 1641개의 건축물이 2021년까지 예비인증 및 본인증을 받았습니다[8][9]. 이중 2021년까지 예비인증만 받은 건물은 1530개이고, 본인증을 받은 건물은 111개입니다. 예비인증 및 본인증 건물 총 1641개 가운데 본인증을 받은 건물은 7%에 불과하고 예비인증만 받은 건물이 자그마치 93%에 달합니다.

왜 예비인증과 본인증 사이에 이토록 큰 차이가 나는지는 앞으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습니다. 법규에 따르면 예비인증을 받은 경우는 본인증을 받아야 합니다[10]. 그러나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예비인증만 받은 건물이 상당한 것으로 보아 본인증 의사가 없는 건물들이 매우 많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물론 급격히 숫자가 늘어난 2020년 이후의 예비인증 건물들은 지금보다는 많이 본인증을 받을 거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2020년부터 1,000 m² 이상 공공 건축물의 제로에너지건축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이 건물들은 예비인증에서 멈추기 어려우리라 예상합니다. 그러나 만약 본인증을 받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면 현재의 경향이 지속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인허가시의 계획도면과 서류로 검증받는 예비인증에 그치게 되면 건축물이 준공되어도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설비는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확보하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특히 건물과 한몸이 되는 건축물 일체형 햇빛발전설비(BIPV)가 아니라 대지에 별도로 설치하기로 한 발전 설비나 건축물이나 해당 대지 밖의 다른 곳에 설치·확보하기로 계획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는 계획에 그치기 쉽습니다. 따라서 준공도면과 현장점검으로 검증받는 본인증을 받지 않는 건물에 제로에너지건축물에 약속된 혜택이 주어져서는 안 됩니다. 예비인증은 계획 검토일 뿐 인증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증제도에서는 예비인증만으로 중요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1].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으로 받을 수 있는 7가지 혜택[12] 가운데 예비인증으로 받을 수 있는 ‘용적률 등 건축기준 완화 혜택’과 ‘기반시설 기부채납률 경감 혜택’은 이익이 아주 큰 중요한 혜택입니다. 규정상으로는 제도적, 재정적 혜택을 받는 경우 본인증까지 받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본인증과 예비인증 사이의 큰 차이는 실제 제도 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합니다.

개념도 소중한 자원이다

화석연료에서 얻은 에너지 및 핵발전에서 얻은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고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얻은 에너지만으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전적으로 모두 감당한다는 온전한 의미의 제로에너지건축물을 만든다는 것은 아주 어렵고 높은 수준의 과제입니다. 이 때문에 대차대조표상의 0을 의미하는 ‘넷제로에너지건축물’ (Net Zero Energy Building; NZEB)이라는 개념으로 제로에너지건축물의 의미를 확장하기도 하고, 의무화하기 너무 높은 목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서 ‘거의제로에너지건축물’ 또는 ‘준제로에너지건축물’ (nearly Zero Energy Building; nZEB)이라는 보다 융통성있는 개념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유럽연합은 가입국 전체에 걸쳐 2021년부터 모든 건축물을 준제로에너지건축물(nZEB)로 짓기로 하고 있죠[13].

이러한 해외의 논의에서 눈여겨 볼 대목 한 가지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의 개념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마구 뜻을 넓혀 가기보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NZEB, nZEB 등의 새 개념, 보완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럽연합의 준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의 경우 나라마다 준비 정도에 맞게 알아서 그 정의를 내리도록 아주 폭넓게 울타리를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 만큼은 상식선을 넘어서지 않도록 아껴두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행 법령과 고시 상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의 문제점은 편의에 맞춰 뜻을 너무 넓게 벌려두어 실상 별 의미가 없는 개념이 되어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 안에는 “‘30년까지 대형건물(예: 연면적 1천 m² 이상)에 제로에너지건축 3등급(에너지 자립률 60% 이상) 적용, ‘50년까지 전 건물 1등급화(2050 시나리오)”라는 단계적 목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14]. 지금의 제로에너지건축물 5개의 등급제가 매우 부족한 잠정적 단계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에너지자급률이 바닥 수준만 아니면 모두 제로에너지건축물이라고 인증을 주고 있는데 2030년이나 2050년에 가서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의 뜻을 바꿀 수 있을까요? 기왕의 인증을 회수하기라도 할 건가요? 이미 대한민국 정부와 국토교통부, 그리고 건설업계는 패시브하우스와 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개념을 제 멋대로 씀으로써 망가뜨린 전례가 있는데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 역시 마찬가지로 무력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지식의 기반이자 결실이기도 한 개념은 우리의 사고가 모두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새로운 사고와 이해를  위한 아주 소중한 자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주 한정된 의미로 잘 다듬어진 개념은 정교한 사고와 대화의 기반이 되는 반면 의미가 한정되지 못하는 개념은 사고와 논의를 소모적인 방향으로 이끕니다. 이미 한정된 의미를 갖고 있거나 충분히 좁혀질 수 있는 개념을 권위만 취하고자 멋대로 소비해버리는 행위는 소중한 비물질적 자원을 망치는 바입니다. 한국의 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 역시 멋대로 쓰이다 폐기될 운명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당장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제도의 기준을 높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행의 기준과 혜택을 모두 그대로 두고 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중요한 개념의 의미가 흐트러지지 않게 운용할 수 있고,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제로에너지건축물의 정의를 현 인증등급의 1등급으로 한정시키고, 준제로에너지건축물 개념을 도입하여 현 2등급 내지는 3등급까지의 기준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겁니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설비가 설치된 건축물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개념으로 ‘건물 발전소’, ‘발전하는 건물’ 등의 개념을 도입한 뒤 에너지 자급률에 따른 혜택을 현재 기준대로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분간은 모든 신축 건물을 에너지 자급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는 건물’로 짓는 것을 의무화하고, 2030년 이후에는 준제로에너지건축을 의무화한 뒤, 2050년부터는 드디어 제로에너지건축을 의무화하는 식으로 단계별 정책 목표를 정할 수 있습니다.

조삼모사처럼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중요한 개념의 의미를 잘 지키는 정책과 개념을 희생시켜 면피를 하고 시늉만 하는 정책의 결과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적어도 현행 제로에너지건축물 정의와 인증제도는 기후위기 시대를 헤쳐나갈 힘이 되기보다는 기후악당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나쁜 정책의 생생한 증거라며 다른 나라의 비난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은 말과 달리 제로에너지건축물이 아니니까요.

주석

[1] “‘제로에너지건축 의무 조기화’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 수립”. <머니투데이>. 2021년 12월 23일자 기사.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22217485233336 (→ 본문으로)

[2]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법률 제18344호, 2021. 7. 27., 일부개정] https://www.law.go.kr/법령/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 (→ 본문으로)

[3]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기준>. [시행 2020. 8. 13.] [국토교통부고시 제2020-574호, 2020. 8. 13., 일부개정] [산업통상자원부고시 제2020-133호, 2020. 8. 13., 일부개정] https://www.law.go.kr/행정규칙/(국토교통부)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인증및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기준/ (→ 본문으로)

[4]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기준>. [별표 1의 2]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기준. (→ 본문으로)

[5] 발표논문 김지영 외(2021)에서는 2017년부터 2021년 4월까지의 인증 현황을 집계해 분석을 한 바 있다. 이를 참고하여 2021년 말일까지의 현황을 집계, 분석하였다. 김지영·권주현·오준걸(2021).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기준과 현황 분석”. <2021년도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제21권 제1호 (통권 41호), pp.50-51. (→ 본문으로)

[6]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시스템 웹사이트. https://zeb.energy.or.kr (2022년 1월 4일 접속) (→ 본문으로)

[7]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로에너지건축물 예비인증을 받은 건물의 현황은 아래의 표와 같이 집계된다. (→ 본문으로)

[8]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제로에너지건축물 본인증 및 예비인증을 받은 건물의 현황은 아래와 같이 집계된다. (→ 본문으로)

[9] 예비인증을 받은 후 본인증까지 받았거나 어떤 이유인지 해를 달리해 예비인증을 두 번 받은 건물이 있는데 둘 중 하나의 기록을 삭제하지 않은 중복 등재 건물 50개를 파악해서 제외한 결과입니다. (→ 본문으로)

[10] “예비인증을 받은 건축주등은 본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예비인증을 받아 제도적ㆍ재정적 지원을 받은 건축주등은 예비인증 등급 이상의 본인증을 받아야 한다.”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에 관한 규칙>. [시행 2021. 8. 23.] [국토교통부령 제878호, 2021. 8. 23., 일부개정] [산업통상자원부령 제430호, 2021. 8. 23., 일부개정] https://www.law.go.kr/법령/건축물에너지효율등급인증및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에관한규칙 (→ 본문으로)

[11]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시스템 웹사이트>인증제도>개요>인센티브 페이지. https://zeb.energy.or.kr/BC/BC03/BC03_05_003.do (2022년 1월 4일 접속) (→ 본문으로)

[12]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인센티브 안내서>. 한국에너지공단. 2020. https://zeb.energy.or.kr/BC/BC04/BC04_01_001_view.do?no=398# (2022년 1월 4일 접속) (→ 본문으로)

[13] https://energy.ec.europa.eu/topics/energy-efficiency/energy-efficient-buildings/nearly-zero-energy-buildings_en (2022년 1월 4일 접속)) (→ 본문으로)

[14] <국토교통 탄소중립 로드맵>. 국토교통부 2021년 12월 23일 보도자료 별첨자료. http://www.molit.go.kr/USR/NEWS/m_71/dtl.jsp?lcmspage=1&id=95086352 (2022년 1월 4일 접속) (→ 본문으로)

송영길은 왜 핵융합을? -에너지전환은 연료전환이 아니다

최우석 (파시브기술연구소 / 녹색아카데미)

지난 6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소형 원자력 발전과 핵융합 발전으로 탄소중립을 이루자고 주장을 하여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대뜸 비판부터 하기보다 어떤 생각의 흐름 위에 있기에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발상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부족하나마 부랴부랴 의견을 담은 글을 써보았습니다. 아직 한참 공부가 필요한 생각이지만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핵발전으로 탄소중립을 이루자는 흐름

먼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6월 1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문 중 탄소중립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 탄소중립의 꿈, 핵융합으로 실현합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충을 주요 국정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남북과 울산에서 각각 10.6기가와트와 6기가와트 규모로 조성 중인 해상풍력 단지가 대표적입니다. ‘RE300’으로 통칭되는 호남 초광역 에너지경제공동체 프로젝트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야심찬 구상입니다. 민주당은 해상풍력과 태양광 발전 뿐만 아니라 다른 재생에너지 기자재 산업 발전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이루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상당 기간 수소,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에너지 믹스 정책이 불가피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대통령님과 당 지도부 간의 첫 청와대 회동에서 SMR 등의 분야에서 한미 원자력 산업의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건의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해외 원전시장 공동 참여’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작년 12월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모듈 원자로, 즉 SMR 개발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SMR이 사막이 많은 중동국가나 지형적 한계가 큰 국가들에게 효과적인 에너지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북핵문제 해결을 전제로, 산악지대가 많고 송배전망이 부실한 북한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탄소중립 목표가 달성되는 2050년 이후, 대한민국이 꿈의 에너지라 불리는 핵융합발전 상용화를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한국형 인공태양 프로젝트’입니다. 
‘한국형 인공태양 프로젝트’는 김영삼 정부 때 구상됐으나 IMF로 무산됐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1년 사업이 재개됐고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7년 시작 6년 만에 KSTAR가 완공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 우리의 핵융합기술은 세계 7개국이 참여하는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11월, 핵융합현상이 발생하는 1억℃의 온도를 20초 이상 유지하는 실험에도 성공했습니다. 영국은 이미 2040년 핵융합발전 상용화를 목표로 뛰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핵융합발전의 상용화 목표를 2050년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태양 기술을 바탕으로 꿈의 에너지 시대를 우리가 선도해야 합니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12초간 비행했습니다. 그로부터 34년 후인 1937년 세계 최초의 제트비행기 엔진이 등장했습니다. 핵융합발전, 불가능하지도 멀리 있는 일도 아닙니다. 앞으로 28년 뒤면 핵융합발전 상용화가 현실이 될 것입니다. 저와 민주당이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당 대표인 제가 직접 탄소중립특위 위원장을 맡아 한국형 인공태양 상용화를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출처 : 국제뉴스(http://www.gukjenews.com) 2021년 6월 16일자 기사 (밑줄 강조는 최우석)

이러한 여당 대표의 구상에 대해 녹색당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같은 시민단체들은 맹비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기후위기를 걱정하면서 핵발전을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송영길 대표 뿐이 아닙니다.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록은 이미 오래 전에 핵발전만이 유일한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이라고 글을 발표한 바가 있고, 독점적 기업인에서 뜻높은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빌 게이츠가 최근 핵발전을 옹호하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공통된 주장들이 있는 만큼 일련의 사고 흐름이 있다고 보고, 이 사고의 흐름 자체를 이해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온실기체입니다. 인류가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 땅 속에 묻혀있던 탄소가 아주 빠른 속도로 풀려났고 결국 산업화 이전 시기 지구 평균 280ppm이었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2020년 현재까지 약 410ppm으로 급격히 치솟았습니다. 이 온실기체로 인한 온실효과의 가중이 전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추가적인 탄소 배출을 저지하는 데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탄소’를 현재 위기의 원인으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탄소를 배출하지 않거나 회수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대차대조표상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자는 것이 ‘탄소중립’이고, 배출된 탄소를 회수하여 땅 속에 다시 집어넣자는 것이 ‘탄소포집’입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하자는 것이 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에너지전환’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탄소’는 기후변화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무엇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화석연료는 과거 지구에 떨어졌던 햇빛 중 일부가 탄소화합물의 형태로 생물의 몸을 이루었다가 땅 속에서 고온고압으로 압축 변성된 것입니다. 이 ‘고농축 과거 햇빛’은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알려졌지만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 및 시스템이 구축되고야 비로소 지상으로 풀려나왔고, 이 밀도 높은 에너지원은 값싸게 강력한 동력을 제공하여 문명의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에너지원은 그에 맞도록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구축된 시스템은 새 에너지원을 더 많이 더 빨리 이용하면서 폭발적으로 문명을 성장시켰습니다. ‘탄소’는 이 전체 체계, 즉 화석연료 문명의 결과입니다. 이 화석연료 문명의 핵심은 화석연료 그 자체라기보다는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고밀도에너지원’에 기반한 시스템입니다.

정리하자면 기후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탄소’를 원인으로 보는 견해‘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을 원인으로 보는 견해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밀도 (energy density)

Layton, B. (2008). A Comparison of Energy Densities of Prevalent Energy Sources in Units of Joules Per Cubic Meter. Int’l J of Green Energy, 5(6). p.441.

이 논문에서는 통상 단위체적당 에너지, 또는 단위질량당 에너지 단위로 에너지 밀도를 측정하는 화석연료와 단위면적당 일률 단위로 측정하는 태양광, 바람, 수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원을 함께 비교하기 위해서 단위체적당 에너지 단위로 통일된 에너지원별 밀도 값을 제시하였다. 위의 에너지 밀도 비교 표를 보면 태양광의 에너지밀도는 입방미터당 1.5 마이크로줄인 반면 석유의 에너지밀도는 입방미터당 45 기가줄로서 2경 배 (2 x 10^16)의 차이가 난다.


연료전환을 과제로 삼는 흐름

기후변화의 원인이 ‘탄소’라면 당연히 시스템을 뒤흔들 필요 없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연료로 동력원을 교체하면 됩니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 에너지밀도로 볼 때 화석연료처럼 꽉꽉 에너지를 눌러 담은 에너지원이나 에너지 운반체는 흔치 않습니다. 햇빛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의 에너지밀도는 화석연료에 비해 현저하게 낮기 때문에 이 에너지원만 가지고 기존의 고밀도에너지원 시스템을 무리없이 돌아가게 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시스템이 아니고는 지금처럼 발전된 문명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는 보수적 기획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원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다른 고밀도에너지원을 찾는 것입니다.

자연히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원자력 발전(핵발전 중 핵분열 발전은 이하 원자력 발전이라고 칭하겠습니다)이 대안으로 꼽힙니다. 방사능 문제,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탄소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 탄소 없는 고밀도에너지원을 이용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라늄 자원이 유한하기 때문에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공태양’이라는 핵융합 발전에 기대를 걸게 됩니다. 주장에 따르면 원료인 수소가 무한정하다 할만큼 풍부하고, 방사능도 없고, 폐기물도 없기에 이 시스템을 유지해 줄 그야말로 궁극의 고밀도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상용화 자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대안으로 제시하기는 힘들었는데 송영길 대표는 과단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수소 역시 이 기존 시스템을 지키고자 하는 기획에서는 눈길이 가는 에너지운반체일 겁니다. 에너지밀도가 화석연료보다도 높기 때문에 수소를 잘 활용하면 고밀도에너지원 시스템의 대체 연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됩니다. 수소는 태양광 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얻은 전기를 저장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여기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보통 원자력 발전 전기로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다만 여건이 완비되기 전까지는 수소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확대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핵융합 발전이 되었건 수소 시스템이 되었건 이것이 준비되기 전까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가면서 재생가능에너지원과 원자력 발전을 적절히 섞어 에너지 공급량을 유지하거나 성장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에너지 공급과 소비를 줄이게 되면 곧바로 경기 후퇴와 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지므로 ‘탄소 없는 성장’을 어떻게든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 ‘연료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일 겁니다.


에너지전환을 과제로 삼는 흐름

흔히 ‘에너지전환’을 화석연료에 기반한 시스템에서 재생가능한에너지원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핵심을 다 표현한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마주 하고 있는 에너지전환의 과제는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고밀도에너지원 기반 문명’에서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대표되는 ‘저밀도에너지원 기반 문명’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시각은 문명이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는 전체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혁신적 기획입니다. 화석연료와 같이 고도로 농축된 에너지원을 대량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명사 전체로 보았을 때 아주 특수한 경우임을 인정하고, 당대에 주어지는 햇빛에 기반한 시스템으로 문명 전체를 전환하되 고밀도에너지원 문명 시기에 우리가 성취한 삶의 질과 민주주의, 평등 등 여러 가치를 지켜내자는 문명 전환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양의 시대로”라는 구호가 말해주듯 일시적인 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을 다시 저밀도에너지원 문명으로 전환시키되 과거의 문명과 다른 ‘도약된 저밀도에너지원 문명’을 세우자는 비전입니다.


연료전환은 에너지전환이 아니다

에너지전환이란 이처럼 문명사적인 대전환의 과제이자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들 대부분과 결별하는 근본적인 변화인데 최근 들어 정부 부처 문서나 기업 홍보물에까지 너무 예사롭게 쓰여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에너지전환’이라는 말은 함께 쓰되 그 뜻하는 바는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건대 송영길 대표는 근본적인 에너지전환의 비전에 동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문제가 있는 연료, 즉 유해물질을 뿜거나, 미세먼지를 일으키거나,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를 그렇지 않은 연료로 바꾸는 ‘연료교체’를 에너지전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판단합니다. 즉, 고밀도에너지원에 맞추어 형성된 에너지원 이용 시스템과 이 위에 형성된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고밀도에너지원으로 연료만 교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송영길 대표가 “탄소중립의 꿈, 핵융합으로 실현합시다”라고 말하는 맥락은 앞에 말한 ‘연료전환’이라는 보수적 기획입니다.

물론 연료전환의 과제조차도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볼 때 불과 5~60년 사이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밥짓고 난방하던 시기로부터 연탄 시대와 석유 시대를 거쳐 도시가스 시대까지 수차례 연료전환을 해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때마다 집집마다 설비가 바뀌고, 가옥 구조가 바뀌고, 연료 공급 체계와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이 바뀌는 등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에너지전환의 과제에 비하면 현재의 체제를 고스란히 유지하자는 기획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러한 보수적인 기획이 과연 대안이 되겠는지를 정당하게 토론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전환 개념을 아무데나 붙여서 개념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이냐 저밀도에너지원 문명이냐

어물쩍 ‘에너지전환’이라는 말만 수용해서 의미있는 논의 자체를 가로막을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 사회, 나아가 인류 문명이 기후위기 앞에서 무엇을 성찰하고 어떤 전망을 세울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합니다. 이 점은 2030년이니, 2050년이니 하는 마감을 설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깊고 넓게 성찰해야 합니다. 현재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목표를 설사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인류 문명이 하루 아침에 공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장기비상시대’로 돌입하여 어둡고 고통스런 길에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전사회적인 노력과 병행하여 문명의 전망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해나가야 합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두 개의 기획은 ‘연료전환’으로 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을 지속해나가자는 것저밀도에너지원 문명을 향해 ‘에너지전환’을 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선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연료전환’을 이루면 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이 지속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 첫 번째 검토 지점이고, 현재까지 1세계 중심으로 성취한 삶의 질과 민주주의 및 평등의 가치를 심각한 후퇴 없이 전인류가 고르게 누리는 저밀도에너지원 문명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 잇따르는 논점일 것입니다.


고밀도에너지원 문명은 온생명 안에서 지속되기 어렵다

이상으로 송영길 대표나 제임스 러브록,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이 왜 원자력 발전이나 핵융합 발전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하거나 중요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지 개념과 논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의견을 간단히 얹어 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밀도에너지원 문명 안에서는 이상 징후가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자동차 연료의 첨가물질인 납 성분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살충제 성분이 생태계 전반에 퍼져나가는 현상과 같이 소위 ‘공해’라 불리던 오염 물질, 유해 물질의 광범위한 확산이 우리가 처음 만난 징후였습니다. 여기에 대해 자동차 연료에 납성분 첨가를 금지한다거나 유독성 물질의 사용을 막는 등의 대처가 있었습니다. 오존층이 파괴되는 현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하여 특정 냉매 물질의 사용 금지를 이끌어냈습니다. 이처럼 몇 가지 성공 사례가 없지 않으나 지구 전체적으로 쓰레기와 오염물질의 확산은 그칠 줄을 모르고 그 결과 생태계 파괴, 생물종 다양성 파괴, 여러 약소 국가와 지역의 생존 기반 붕괴와 빈곤, 불평등, 이주 문제 확산 등의 문제가 점차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미세먼지의 문제도 이 중 한 가지일 뿐입니다. 핵발전과 대형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확산과 멜트 다운 사고 우려도 전지구적인 문제가 되어 있고, 지금은 이 모든 문제를 압도하는 문제로 기후위기가 닥쳐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더 근본적인 원인이 낳은 중간 결과, 2차적인 원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한 고개 넘은 후에 또 다른 고개가 나타나는 일이 왜 반복될까요? 과연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면(일단 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이 막대한 에너지만 얻어쓸 수 있는 이상적인 시대가 열릴까요? 섭씨 1억도가 넘는 온도를 계속 유지해야 가능하다는 핵융합 발전에 과연 아무런 위험요소와 문제가 없을까요? 어쩌면 여우를 피해 호랑이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랫동안 우리 온생명은 태양에서 비롯된 햇빛이 지구 쪽으로 가져다 주는 자유에너지를 복잡다단한 낱생명의 그물이 고루 나누어 이용하면서 지속되어 왔습니다. 햇빛은 지구의 절반 면적에 걸쳐 희박한 밀도로 오지만 지속적으로 넓은 면에 걸쳐 오기에 전체적으로는 막대한 양이 됩니다. 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온생명은 번성하였습니다. 물론 햇빛의 세기와 자유에너지 양은 시기별로 늘 변해왔지만 이 저밀도의 에너지에 더하여 밀도 높은 별도의 에너지가 전해진 것은 운석의 충돌이나 지구 내부의 에너지가 분출하는 때 이외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도의 고밀도 에너지가 가해졌을 때에는 큰 변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너지 총량이 급격하게 변화하였으니까요.

이러한 거시적인 시각에서 생각해 본다면 인류가 현재 더하고 있는 고밀도 에너지는 그 양과 속도의 면에서 온생명에 큰 충격이 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탄소가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특정한 메커니즘 상의 변동이 일어나 이것이 더 큰 차원의 변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검토해야 할 대상은 ‘탄소’나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 뿌리를 두고 있는 ‘고밀도에너지원 시스템’이 과연 온생명의 생리, 또는 지구생태계의 밸런스 안에서 지속가능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전망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전망을 갖추지 못한 즉자적인 대응, 즉 탄소가 문제 되면 탄소를 없애고, 미세먼지가 문제 되면 미세먼지를 없애는 식의 비본질적인 대응은 위기를 돌파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송영길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우리의 현 단계를 돌아보는 더 깊은 연구와 논의를 해봐야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열회수배수기술, 탄소배출없애기를 향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레오나르도 에너지(Leonardo ENERGY)는 유럽의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유럽 구리 연구소(European Copper Institute)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곳에서 에너지전환에 관련된 각종 백서와 보고서들, 그리고 중요한 웨비나를 접할 수 있는데 지난 11월 26일에는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웨비나가 있었습니다. 8월에 발표한 백서에 기반하여 열회수배수기술의 원리를 소개하고 유럽의 탄소배출없애기에 이 기술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럽의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논의 및 개발 현황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겠기에 두 차례에 걸쳐 이 웨비나백서의 내용을 전해 보겠습니다.


80%가 버려지는 온수에너지

2018년 기준으로 유럽의 주거 부문에서 사용하는 최종에너지 소비량은 사용처별로 난방 63.6%, 온수 14.8%, 조명과 가전기기 14.1%, 조리 6.1%, 기타 1.0%, 냉방 0.4% 순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및 자료 출처 : Eurostat – Statistics Explained>Energy consumption in households . 접속: 2020년 12월 11일 )

EU에서 건물 분야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약 40%,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의 3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중 주거용 건물 부문만 본다면 난방에너지가 63.6%로 1위, 온수에너지가 14.8%로 2위에 해당합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럽은 난방에너지 비중이 매우 크고, 온수에너지의 비중은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새로 짓는 건물의 상당한 비중이 파시브하우스나 저에너지하우스 수준으로 지어지고 있고 기존 건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이기 위한 수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점차로 난방에너지의 비중이 줄고 있습니다. 반면 온수에너지의 절대량은 줄지 않고 있어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건물 에너지 성능 규정에 따라 증가하는 온수에너지의 비중(스위스).
회색이 난방에너지, 주홍색이 온수에너지. 건물 에너지 성능 기준이 높아질수록 난방에너지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 결과적으로 온수에너지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출처 : Jean-Marc Suter, Fachveranstaltung Trinkwasser aus Sicht der Gesundheit, Energieeffizienz u. Wirtschaftlichkeit, Nov. 2015, Bern. 스위스 열회수배수장치 제조업체 Julia 홈페이지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4에서 재인용.)

오늘날 유럽의 주택에서만 매일 2천2백만 m³의 온수를 소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온수를 만드는 데에 들어간 열의 80%는 배수구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절대량으로 보나, 점차로 커지고 있는 비중으로 보나 온수에너지 부문에 대한 탄소배출없애기 대책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열회수배수, 당장 손에 잡히는 해결책

그런데 이 버려지는 온수에너지를 최대 70%까지 되찾아올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먼 앞 날을 내다보고 개발을 해야 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있고, 적용 즉시 효과를 발휘하는 손 안의 기술, 바로 열회수배수(Wastewater Heat Recovery; WWHR 또는 Drain Water Heat Recovery; DWHR) 기술입니다. (녹색아카데미 웹진에서는 이 기술을 소개하는 글을 여러 편 실은 바 있습니다.[1] 자세한 설명은 이 글들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열회수배수의 원리를 설명하는 그림들.
(출처: 앞의 그림 독일 열회수배수장치 제조업체 Wagner-Solar 홈페이지; 뒤의 그림 스위스 열회수배수장치 제조업체 Julia 홈페이지. 접속: 2020년 12월 11일.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6에서 재인용

열회수배수는 지극히 단순한 기술입니다.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배수의 열을 차가운 상수가 빼앗아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배수관과 상수관을 붙여놓건, 배수관을 상수가 감싸고 들어오게 하건, 배수가 상수관을 휘감아 흘러나가게 만들건 열교환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환경이 망가지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배수의 열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잘 고안된 열교환장치만 한 번 설치해두면 아무런 추가 조치 없이 10℃ 정도의 상수 온도를 최대 30℃ 까지도 올릴 수 있습니다. 차가운 상수가 배수의 버려지는 열을 빼앗아 데워져서 들어오게 되면 그만큼 온수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온수사용처별 비중.
샤워가 80%로 압도적으로 비중이 크고, 그 뒤로 세면대 7%, 욕조 6%, 부엌 설겆이 5%, 빨래 2% 순이다.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백서(2020), p.7, 원출처 : Cordella, M., Garbarino, E.,
Calero, M., Mathieux, F., Wolf, O. (2014). “MEErP Preparatory Stuy on Taps and Showers”. European Commission Joint Research Centre Report
.)

샤워 부문은 온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부문입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온수의 80%가 샤워에 쓰인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샤워는 열회수배수에 최적인 부문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배수가 흘러나가는 동시에 차가운 상수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샤워의 배수는 가정 내 다른 배수나 오수에 비해 오염도가 적어서 열회수에 이상적이기도 합니다.[2]

따라서 샤워기를 쓰는 단독 주택이나 공동 주택에서 열회수배수를 할 수 있습니다. 주택 뿐아니라 샤워 온수를 많이 쓰는 스포츠 시설, 미용실, 호텔, 수영장과 같은 비주거 건물에도 쉽게 도입할 수 있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 뿐아니라 기존 건물에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설치할 수 있어 적은 비용으로 단기간에 널리 보급할 수 있는 아주 유력한 탄소배출없애기 해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열회수배수기술의 현황

유럽에서는 2010년 이래로 열회수기술 분야에서 326개의 특허출원이 있었습니다. 이 분야의 전세계 특허출원의 70%입니다. 지금까지 유럽에서는 17,000 가구의 연간 온수에너지 소비량에 해당하는 300 GWh의 에너지를 열회수배수를 통하여 회수하였습니다. 가장 많이 설치된 장치는 수직 파이프형으로서 150,000개 이상의 시스템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유럽 열회수배수 협회(WWHR Europe)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6개국의 12개 제조업체와 유럽의 1개 연구소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수평형 열회수배수장치 제품 사례들.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7)
수직형 열회수배수장치 제품 사례들.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8)

지금까지 열회수배수장치가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입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건축 법규에 열회수배수장치 관련 표준이나 조항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RT2012와 곧 시행될 RE2020에 열회수배수를 재생가능에너지 열원으로 포함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는 신축 건물의 에너지성능 계산 소프트웨어에 열회수배수에 관한 입력항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행 에너지성능인증제(EPC) 규정에 따른 것인데, 2021년부터 시행될 제로에너지건축물(BENG) 규정 역시 열회수배수에 관한 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9년 10월 주택·커뮤니티·지방정부부(MHCLG)에서 열회수배수가 가장 경제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임을 적시하고, 2020년 이후 신규 주택에 대한 건축 규정에 열회수배수가 훨씬 중요하게 명문화될 것임을 예고하였습니다. (각국의 관련 규정에 대한 원문의 언급이 너무 간단하여 의역 과정에서 잘못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나? – 한 가구 사례

다음과 같이 평균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한 가구의 1년간 온수에너지 사용량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 볼 수가 있습니다.

  • 샤워 1회당 시간 : 9분
  • 찬물 온도 : 10 ℃
  • 보일러에서 만든 더운물 온도 : 60 ℃
  • 찬물 더운물 섞은 샤워물 온도 : 38 ℃
  • 분당 물의 흐름 : 9.2 리터/분
  • 1년 샤워하는 날 수 : 365일
  • 가구 당 평균 구성원 수 : 2.3명
  • 전기의 이산화탄소 배출 계수 : 0.34 kg/kWh (네덜란드 표준 NTA8800)
  • 가스의 이산화탄소 배출 계수 : 0.183 kg/kWh (네덜란드 표준 NTA8800)

이에 셈해보면 열회수배수장치가 없는 평균적인 가정의 1년간 온수에너지 사용량은 아래 표와 같이 전기의 경우 2,264 kWh, 가스의 경우 231 m³/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기의 경우 770 kg, 가스의 경우 414 kg으로 계산이 됩니다.

열회수배수장치가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 한 가정 샤워 시스템의 연간 에너지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 계산 사례.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백서(2020), p.8)

여기에 시장에 나와있는 제품들의 평균치인 열회수율 56%[3]의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었다고 가정하면 다시 위 표와 같이 전기의 경우 1,430 kWh의 온수에너지 소비에 486 kg의 이산화탄소 배출, 가스의 경우 144 m³/년의 온수에너지 소비에 262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는 것으로 계산이 됩니다. 열회수배수장치를 통해서 전기의 경우 833 kWh의 온수에너지를 절약하고, 283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은 셈입니다. 가스의 경우는 85 m³/년의 가스와 153 kg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절감한 셈입니다.

가상적이지만 평균적인 이 상황에서 열회수배수장치를 통해 37%의 온수에너지 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용으로 보면 대략 연간 50~150유로의 온수에너지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나? – EU 28개국

2017년 유럽연합 28개국 전체의 주거 분야 온수에너지 통계.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19)

2017년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28개국의 주거 온수 부문의 온수 에너지는 495 TWh로 주거 분야 최종에너지 소비량 3,342.52 TWh의 14.8%를 차지합니다. 이 중 샤워 온수에 들어간 에너지는 주거 온수 에너지의 80% (연간 396 TWh)로서 유럽연합 28개국 전체 최종에너지 소비량(12,329.08 TWh)의 3.2%에 해당합니다.

유럽연합 28개국에서 목욕과 샤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원 대부분이 화석연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온수를 소비할 때 바로 생산하는 순간 온수 방식에 쓰이는 에너지원인 전기와 가스 두 개의 에너지원에서만 매해 7천5백만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만약 모든 가정에 열회수배수장치가 설치되었다고 가정하면 이 중 40% 가량, 약 3천만톤을 배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 – 2030년까지 에너지 절약 잠재력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21)

이러한 가능성에 따라서 이 웨비나에서는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030년까지 고쳐짓기 물결 전략에 따라 고쳐짓게 될 3천5백만개의 건물과 신규 주택 공급 계획에 따라 새로 짓게 될 1천6백만개 주택 가운데 50%에 열회수배수장치를 설치하여 2030년까지 연간 17.88 TWh 또는 연간 1.54 Mtoe의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자는 것입니다.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 – 고쳐짓기 물결의 2030 목표 달성에 열회수배수가 차지하는 몫
(출처 : 열회수배수기술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23)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의 온실 기체 배출을 감축하겠다는 <기후 목표 계획 2030>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 부문의 온실 기체 배출을 2015년 대비 60% 감축(276 Mton 감축)하고, 건물 부문의 최종에너지 소비를 2015년 대비 14% 감축(50 Mtoe 감축)해야 합니다. 2030 열회수배수 시나리오는 이 기후 목표 계획 2030의 건물 부문 최종에너지 감축 목표의 3.07%, 온실 기체 배출 감축 목표의 8.07%를 떠맡을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열회수배수에 관한 최근 레오나르도 에너지의 웨비나의 주요 내용들을 추려 정리해보았습니다. 이어 다음 글에서는 이 웨비나에서 발표된 열회수배수장치에 대한 실증연구결과와 유럽 열회수배수 협회에 등록된 12개사의 다양한 열회수배수장치들을 정리, 소개하겠습니다.

최우석 (녹색아카데미 / 파시브기술연구소)


[원자료들]

[웨비나 영상]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열회수배수 시스템”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2020년 11월 26일 웨비나 영상.
Pinter, R. Low hanging fruit in decarbonisation of buildings? Wastewater Heat Recovery (WWHR) systems.; Durou, H. Locker room showers: one collective WWHRS or multiple individual WWHRS? Leonardo ENERGY Webinar, 26 November 2020.

[웨비나 화면자료]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손에 잡히는 해결책? 열회수배수 시스템”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2020년 11월 26일 웨비나 화면자료 슬라이드
Pinter, R. (2020). “Low hanging fruit in decarbonisation of buildings? Wastewater Heat Recovery (WWHR) systems”.; Durou, H. (2020). “Locker room showers: one collective WWHRS or multiple individual WWHRS?” Presentation Slides for Leonardo ENERGY Webinar, 26 November 2020.

[백서] 유럽 건물 부문 탄소배출없애기를 위한 열회수배수기술의 역할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한 2020년 8월 백서
Pintér, R., Vessey, A., Tissot, O. (2020). ROLE OF WASTEWATER HEAT RECOVERY
IN DECARBONISING EUROPEAN BUILDINGS
. European Copper Institute White Paper: ECI Publication No Cu0270

[주석]

[1] 녹색아카데미 웹진에 실린 열회수배수기술 관련한 글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본문으로 돌아가기)

[2] 상수와 배수는 직접 섞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열만 교환하기 때문에 배수의 오염도는 원칙적으로 열교환에는 관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수의 오염도가 심할수록 배수관의 안쪽 벽에 이물질이 쌓여서 원활한 열전달을 방해합니다. 배수에 섞여 나가는 이물질이 열을 품어서 배수관의 벽으로 전달할 열의 절대량이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또 배수가 배수관 벽을 따라 소용돌이치듯 회전하면서 빠져나갈수록 열교환율이 높아지는데 오염도가 심하면 이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정 내 다른 배수에 비해 오염도가 낮은 샤워 배수가 열교환에 가장 유리합니다. (→ 본문으로 돌아가기)

[3] 열회수배수장치의 열회수율, 즉 정상 상태 온도 비율(stationary temperature ratio) ηstationary 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모는 배수와 찬물의 온도 차이이고, 분자는 열을 회수한 뒤의 찬물과 열을 회수하기 전 찬물의 온도 차이입니다. 열회수율이 56%인 경우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배수의 온도가 35 ℃이고, 밖에서 들어오는 찬물의 온도가 10 ℃라면 열을 회수한 뒤의 찬물(T HR)의 온도는 24 ℃가 됩니다.

(→ 본문으로 돌아가기)

IEA [에너지 효율 지표] 살펴보기 (2) – 한국

이제 한국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IEA의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웹페이지에서는 국가별 상황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28개 IEA 가입국과 최근 자료를 제출하고 있는 9개 국가 각각에 대한 분석 그래프는 PDF 문서로 제공되는 <에너지 효율 지표 2019 하이라이트>에 실려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문서의 한국 분석 그래프는 2016년 기준으로 되어 있어 일부 데이터만 발췌하여 표로 제공하는 최근 자료(Free extract of Energy Efficiency Data Service)를 그래프로 가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분야별 최종에너지 소비, CO2 배출 비중

한국의 분야별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 (2018)
IEA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자료로 최우석 정리
한국의 분야별 CO2 배출 비중
IEA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자료로 최우석 정리

IEA <에너지 효율 지표 2020>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엑셀 데이터 발췌 자료를 가공하면 2018년 한국의 분야별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과 CO2 배출 비중은 위의 두 개 그래프와 같이 정리됩니다.[1]

최종에너지 소비에 있어서나 이산화탄소 배출에 있어서나 제조 분야가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앞서 지적했듯이 제조 분야의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에너지전환과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수준 달성에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그러하듯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절반 감축을 단기 목표로 하고, 2050년까지 배출 없는 수준 달성을 장기 목표로 한다면 주거와 서비스 쪽은 단기 집중 과제로, 운송 분야는 중기 집중 과제, 제조 분야는 장기 집중 과제로 놓고 당장부터 각각의 트랙을 가동해야 목표로 하는 시점에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네 번째 비중이었던 서비스 분야가 이산화탄소 배출[2]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것은 확인을 해보아야겠지만 아마도 서비스 분야가 전기에너지를 다른 분야보다 많이 쓰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종에너지의 단위에너지당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것이 화석연료 변환 전기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를 변환하여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기존 에너지 시스템에서는 전기에너지는 가급적 덜 쓰는 것이 현명합니다. 한국의 경우 전기에너지 형태의 최종에너지 1kWh는 화석연료 1차에너지 2.75kWh를 태워야 얻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의 길목에서 전기화(electrification)는 필수적인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얻게 되는 에너지 태반이 전기에너지이기도 하고, 미세한 통제가 가능한 전기에너지야말로 에너지 효율을 큰 폭으로 높이는 데 적합한 에너지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화석연료 기반으로 강력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운송과 제조 분야보다 전기에너지 소비가 많은 서비스 분야가 조기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

부문별로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3] 최종에너지 소비량은 2018년 기준으로 금속(철+비철) 제조 19%, 승용차(자가용, SUV, 개인용 트럭 등) 12%, 주거 난방 7% , 화학 제조 6%, 도로 화물 운송 6% 순입니다.

제조 분야를 장기 과제로 생각한다면 중단기 안에 획기적으로 소비와 배출을 줄여야 하는 부분은 단연 승용차와 주거 난방 부문입니다. 그 밖에도 도로화물운송 부문과 서비스 난방(5%), 주거 급탕(5%) 역시 과제인 동시에 가능성으로 눈에 들어 옵니다.

주거 분야

주거 분야에서는 주거 난방 42%, 주거 급탕 29%, 주거 가전 19% 순으로 비중이 큽니다. 이 세 부문 소비가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7%, 5%, 3%로서 결코 작지 않은 만큼 이 세 부분에 대해서 비상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거 가전 부문은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소비량을 줄이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이 부문이야말로 효율을 높일수록 도리어 소비가 늘어나는 “제본스(Jevons)의 역설” 효과가 여실한 부문입니다. 지금까지 주거 가전의 에너지 효율 향상은 눈이 부실 정도이지만 그 이상으로 더 많은 종류와 갯수의 가전기구를 보유하여 에너지 소비량은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떻게 제본스의 역설을 넘어설지 소유와 소비에 대한 본질적 차원의 모색이 필요한 부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면 주거 난방과 주거 급탕 부문에 대한 접근은 일종의 기술 운동의 성격을 갖습니다. 열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이 영역에서 소비 자체를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난방과 급탕에 필요한 열에너지는 삶의 질과 직결되는 기본적인 에너지 요구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이 때 삶의 질을 유지하고자 기존 관행 기술 하에 열에너지 공급으로 질을 유지하는 공급 우선의 기술적 선택(액티브 기술 중심의 해법)을 할 수도 있고, 파시브 기술의 전면적 도입으로 에너지 효율을 대폭 높여 에너지 양은 줄이면서 요구는 만족시키는 효율 우선의 기술적 선택(파시브 기술 중심의 해법)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나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어떤 기술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해결을 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거 급탕 부문은 이미 한국의 목욕 문화가 샤워 중심으로 바뀐만큼 열회수배수장치를 도입하면 비교적 단시간에 복잡할 것 없는 기술 및 시공으로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욕실 바닥과 벽을 깨고 배관을 새로 해야 하기 때문에 한 가정으로서는 부담이 가볍지 않습니다. 때문에 어떤 기술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개인적 결단과 동시에 공동체에 복무하는 개인의 선택을 북돋는 사회적 보상 체계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주거 난방은 급탕보다 더 까다롭습니다. 효과는 확실합니다. 파시브기술을 건축물의 외피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신축 건물은 보통 건물이 쓰는 난방에너지의 10% 이하만 가지고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 수 있고, 기존 건축물은 고쳐서 그에 가까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필요한 파시브기술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충분하게 발전되어 있지만 한국에는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또한 전문 자재들도 국내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수준 낮은 의무 부과 중심의 정책이 시장을 발전시키지 못하다 보니 앞서 가는 소비자와 공급자가 모두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늉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시키지 않아도 먼저 선한 기술에 돈을 쓰는 사람이 벌을 받는 상황을 뒤집어야 돌파구가 열릴 거라 생각합니다.

IEA <에너지 효율 지표>에서는 에너지 집약도(energy intensity)와 탄소 집약도(carbon intensity) 지표도 부문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거 분야 에너지 집약도를 보면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2000년을 100으로 볼 때 2018년 120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인당 탄소 배출량은 100에서 129까지 상승했습니다. 가구당 소비 및 배출은 줄었는데 이것은 가구 구성원 수가 준 탓으로 판단됩니다. 부문별로 보면 난방 부문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다소간 줄었지만 조명과 가전은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조명 기구의 에너지 효율은 그 사이 LED등의 도입과 백열전구 퇴출로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그보다 훨씬 많이 불을 밝혀서 2000년 대비 2018년 2.5배나 에너지 소비량이 늘었습니다. 가전 역시 2000년 100 대비 168까지 증가했습니다.

한국의 주거 분야 부문별 가구당 에너지 집약도 (2016) (단위: GJ/가구)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69)
한국의 주거 분야 부문별 단위면적당 에너지 집약도 (2016) (단위: GJ/m²)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69)

무료 공개 자료의 한계 때문에 위 그래프에는 급탕과 조리, 냉방 등의 동향은 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PDF 문서로 제공되는 <에너지 효율 지표 2019 하이라이트>에는 이에 대한 2016년 그래프가 있습니다. 가구당 급탕 에너지 집약도는 높아지고, 조리 에너지 집약도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줄어드는 가구 구성원 수를 생각하면 조리 에너지 집약도는 1~2인 가구 증가 추세와 외식 증가 경향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주거 급탕 부문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샤워를 하는 등 일인당 온수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단위 면적당 난방에너지 집약도도 낮아진다고 보고되는데 이에 비해 난방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줄지 않은 것은 일인당 주거 면적이 커지고 있는 점을 말해줍니다.

서비스 분야

서비스 분야는 난방 뿐만 아니라 냉방과 조명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금까지 집에서는 냉방을 최소하려 하는 반면 상업시설과 업무시설에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경향으로 보건대 곧 주거 분야의 냉방에너지 소비 역시 서비스 분야의 경향을 따라올 거라 생각합니다.

난방과 냉방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파시브기술의 도입으로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을 높여야 합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상업시설이나 업무공간에서는 절약되는 에너지비용으로 투자를 회수하는 기간이 주거 분야에 비해 훨씬 빠릅니다. 사용하는 바닥 면적 대비 투자가 필요한 건물의 외피 면적이 작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성능 향상을 위해 가정집 한 채에 들어가는 비용과 상업용 건물 한 채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용 면적으로 나누어보면 가정집에 들어가는 단위면적당 비용이 훨씬 큽니다. 따라서 에너지 보조금을 없애고 탄소세를 도입하며 비용을 현실화하는 등의 에너지 비용 합리화 정책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의 국토교통부가 시행하고 있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정책과 같이 시늉만 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엉터리 정책의 폐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위 부가가치당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비교하는 서비스 분야의 에너지 및 탄소 집약도는 많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문별 자료는 볼 수가 없어서 상세한 사항은 살펴볼 수가 없어 아쉽네요.

제조 분야

한국의 산업과 서비스 분야 최종에너지 소비량 2000-2016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70)

한국의 제조 분야는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고 에너지 사용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금속과 화학 등 에너지 소비량이 큰 산업이 몫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래의 부가가치당 에너지 사용량 및 탄소 배출량을 비교하는 에너지 및 탄소 집약도 그래프를 보면 제조 분야 전체의 집약도는 그동안 많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금속 부문 만큼은 도리어 에너지 집약도 및 탄소 집약도가 나빠졌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에서는 금속 부문이 가장 큰 장벽이 될 듯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에너지 소비를 선도하는 1위 금속 부문(48%)의 부가가치 비중이 2016년을 기준으로 4위 8%에 불과하고, 소비와 배출 3위 기계 부문(13%)의 부가가치 비중이 49%나 된다는 점입니다. 위의 에너지 및 탄소 집약도 그래프에는 공개된 자료 미비로 기계 부문의 집약도는 싣지 못하였지만 아래의 그래프를 참조한다면 아마도 가장 낮은 수준을 그리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제철 등의 금속 산업은 제조 분야의 중핵을 이루는 산업이지만 현재와 같이 부가가치가 낮고 에너지소비는 큰 구조에서는 기후위기 시대 제일 크게 타격을 입을까 걱정입니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가 될 우려도 있고요. 이 부문에 올 타격을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산업 부문별 부가가치 비중 (2016)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70)

운송 분야

한국의 운송 분야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 (2000-2016)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71)
IEA <에너지 효율 지표 2020>에서 제공하는 수치 자료와 <에너지 효율 지표 2019 하이라이트>의
수치 및 그래프 자료의 운송 분야 에너지소비량값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 유의 바랍니다.

한국의 운송 분야는 도로 부문의 에너지 소비가 압도적입니다. 9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소비량이 상승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효율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단위거리당, 차량-단위거리당 에너지 소비량이 모두 증가하고 있습니다. 차량은 커지고 차량당 승객 점유율은 낮아지고 있는 경향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도로화물운송의 톤-단위거리당 에너지 집약도만 좋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대형 화물차량 중심의 화물운송 때문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승용차 부문이 우선적인 과제인데 재생가능전기 중심으로 시스템을 전환하는 과제와 함께 소비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난제라 생각됩니다.


이상으로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IEA의 <에너지 효율 지표 2020>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며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좀 해보았습니다.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자료 읽기를 시도해본 것은 기후위기를 염려하는 시민들이 현재의 상황과 과제, 그리고 해법을 얻기 위한 공부를 전문가에 기대지 않고 틈나는 대로 해나가야 우리 자신과 전문가 영역의 생각의 결도 바꾸어낼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자료들을 접하면서 중요한 사실과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종종 공유하겠습니다.

녹색아카데미 최우석 (파시브기술연구소)

[주석]

[1] IEA의 <에너지 효율 지표> 데이터베이스에서 분야별로 제공하는 최종에너지 소비량과 CO2 배출량 총합은 <세계 에너지 밸런스>나 <연료 연소별 CO2 배출량> 데이터베이스에서 제공하는 값과 적지 않게 차이가 납니다. IEA에서 제공하는 <에너지 효율 지표> 해설문(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June 2020 Edition Database Documentation)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중요한 사항만 꼽아본다면 <에너지 효율 지표>에는 석유, 석탄 등 에너지자원의 비에너지 사용량은 제외되고, 군사 부문의 에너지 사용량도 배제된다고 합니다. 또 에너지원별 사용량 자료를 최종에너지 사용 부문별 사용량으로 세분하여 분류·변환하는 과정에서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고, 그 밖에 데이터베이스별로 다른 접근 방식이나 개별 국가의 자료 제공처 문제 때문에도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IEA에 자료를 제출한다고 하는데 2018년의 경우 IEA 데이터베이스 간에 아래와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 한국 전체 최종에너지 소비량 (2018)
    •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분야별 소비량 합산치 : 6019.17 PJ
    • <세계 에너지 밸런스 2020> : 7628.92 PJ (182,205 ktoe)
  • 한국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2018)
    •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분야별 배출량 합산치 : 578.43 MtCO2
    • <IEA 데이터 서비스> : 586.16 MtCO2
    • <연료 연소별 CO2 배출량> : 605.8 MtCO2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IEA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들 간에는 수치 차이가 납니다. 또한 각국의 분야 및 부문 통계 집계 방식의 한계와 어떻게도 엄밀하게 구분하여 집계할 수 없는 원천적인 한계들도 있어 분야별,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자료는 정확할 수 없는 근사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본문으로)

[2] IEA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계산 방식은 각 부문의 최종에너지 소비량에 에너지원별 이산화탄소 배출 환산 방식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 본문으로)

[3]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에 대한 집계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많은 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라는 것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연료별로는 직접적인 소비량 파악이 가능하겠고, 전기에너지나 도시가스 등과 같이 시스템을 갖추고 소비량에 과금을 하는 에너지들은 계측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공급된 전기가 난방에 쓰였는지, 급탕에 쓰였는지, 조리에 쓰였는지 직접적으로 파악할 길은 현재 없습니다. 난방과 급탕을 하나의 보일러로 다 공급하는 경우에도 여기에 소비된 가스를 부문별로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정확한 것은 자료 제출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을 통해서 확인해보아야겠지만 아마도 연료별 사용량을 표본 연구를 통해서 얻은 각 분야의 부문별 비율로 나누는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따라서 IEA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값 및 비중은 추세를 이해하기 위한 대략의 추정값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본문으로)

IEA [에너지 효율 지표] 살펴보기 (1) – IEA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이하 IEA)의 뉴스레터는 2020년 11월 19일 IEA에서 새로운 반응형 데이터 서비스인 <에너지와 탄소 추적기(Energy and carbon tracker)>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에너지와 탄소 추적기>는 IEA의 <세계 에너지 밸런스(World energy balances)>, <연료 연소별 CO2 배출량(CO2 emissions from fuel combustion)>, <에너지 효율 지표(Energy efficiency indicators)>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국가 수준에서 CO2 배출량, 에너지 소비, 전력 소비 등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게 돕는다고 합니다. 얼추 살펴보건대 <에너지와 탄소 추적기>는 2020년 7월에 발표된 위의 세 가지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들을 조금 더 이용하기 편하게 가공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로 보입니다. 유료 버전은 아주 상세한 데이터 전체를 다양하게 재정렬할 수 있다고 하고, 무료로 공개된 자료들만으로도 중요 지표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을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중 <에너지 효율 지표>에서 보여주는 바에 가장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에너지와 탄소 추적기> 소식을 접한 김에 매해 두 번 업데이트된다는 <에너지 효율 지표 2020>의 6월판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1] 이번 편에서는 IEA 가입국 중 16개 국가[2]의 자료를 합산해 분석한 IEA 가입국 동향을 정리해 보고, 다음 편에서는 한국의 상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에너지 효율 지표 2020>은 각국이 제출한 2000년부터 2018년까지의 최종에너지[3] 소비량 자료와 최종에너지 효율 지표, 그리고 주거, 서비스, 산업, 운송 등 4개의 분야별 탄소집약도(carbon intensity) 지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020년판에는 최초로 최종 사용 단계의 탄소 배출량 자료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최종 에너지 사용량의 분야별 비중

우선 IEA 가입국 전체 및 각각의 나라가 분야(sectors)와 부문(subsectors)별로 얼마나 많은 최종에너지를 썼고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인상적입니다. IEA 가입국 전체와 한국의 분야·부문별 최종에너지 사용량 그래프를 비교해보았습니다.

분야·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 – IEA 가입국 전체
Final energy consumption by end use for IEA
분야·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량 – 한국
Final energy consumption by end use for Korea

이 두 그래프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고약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조, 운송, 주거, 서비스 네 개의 분야 중에서 사람들의 의식적인 노력이 가장 결실을 맺기 어려운 분야는 제조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조 분야의 생산 시스템은 매우 강력하게 구조화되어 있어 큰 투자로 구조를 바꾸기 전에는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을 줄여보려는 작은 시도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래프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여타의 나라들에 비해 제조 분야 비중이 월등히 큽니다. 물론 최종 사용 단계를 제조와 주거, 서비스 등으로 나누는 경우에는 사무실과 공장, 매장 등 비주거용 건물 안에서 사용하는 건물 에너지 소비량을 제조와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잡아버리므로 제조 분야의 에너지 소비량이 과다하게 잡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제조 분야 비중이 크고 이 때문에 탄소 배출을 줄이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EA 2017한국 2017
제조25.2 %45.0 %
운송38.2 %23.7 %
주거21.4 %16.1 %
서비스15.2 %15.2 %
분야별 최종에너지 사용량 비중 – IEA 가입국 전체와 한국 (IEA 자료를 최우석 재정리)

부문별로 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한국의 제조 분야에서는 금속과 기계, 화학 분야의 비중이 크고, 운송 분야에서는 승용차(passenger cars) 부문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주거 분야에서는 난방, 급탕, 조명 및 가전의 순으로 비중이 엇비슷해 보입니다.

역시 제조 분야에서의 변화는 아주 어려운 과제가 될 거라 예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제철 산업을 포함하는 금속 부문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으로서 에너지 소비량과 탄소 배출 감축은 매우 힘든 과제입니다. 운송 분야 역시 변화가 쉽지 않지만 승용차의 비중이 큰 것이 문제이자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류 운송보다는 여객 운송이 더 유연할 수 있고, 또한 야심차게 도로를 태양광 발전소로 바꾸어 나간다면 재생가능전기로 에너지원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도 크기 때문입니다. 주거 분야에서는 가전 제품 효율화와 열회수배수장치의 도입으로 가전 부문과 급탕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을 비교적 손쉽고 빠르게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가전 제품의 수량과 이용 빈도가 빠르게 늘어나면 효율화의 효과가 모두 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난방에너지 소비량 또한 파시브하우스 도입으로 대대적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생각해보겠습니다.

최대 에너지 사용 및 탄소 배출 부문들

<그림 4> IEA 16개국 분야별 최대 에너지 사용 부문들 (2017)
IEA, Largest end-uses of energy by sector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 문서에서 재인용)
(*Passenger cars는 자가용차, SUV, 그리고 개인용 트럭 등. **기타 산업은 농업, 광업, 건설업 등)

IEA 16개국의 분야별 최종에너지 사용량 비중은 운송 분야 36%, 제조 분야 23%, 주거 분야 20% 순입니다. 부문으로 들어가면 승용차 부문(21%)이 단연 1위입니다(그림 4). 승용차(20%)와 도로화물운송 부문(10%)을 합치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그림 5). 10년 안에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승용차 부문에 대한 비상한 대책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림 5> IEA 16개국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 상위 10개 부문 (2017)
IEA, Top ten CO2 emitting end uses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3에서 재인용)

또한 탄소 배출량 3위가 주거 난방(7%), 8위가 서비스 난방(3%), 9위가 주거 급탕(3%)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기타 부문에 묻혀 있을 서비스 급탕, 제조 난방 등까지 고려한다면 건축물 안의 난방과 급탕에서 비롯되는 탄소 배출량이 도로 운송 부문의 그것에 못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IEA 자료에서는 이 점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추후 다른 자료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거 분야

<그림 6> IEA 16개국 주거분야의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 (2017)
IEA, Shares of residential energy consumption by end use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3에서 재인용)

주거 난방은 IEA 16개국 주거 분야 에너지 소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유럽 나라들은 비중이 더 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나라들은 비중이 꽤 낮습니다. 가전기구와 급탕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이 3개 부문의 비중이 87% 가량 됩니다. 따라서 이 부문에 노력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특히 기술적으로는 가장 간단하고도 손쉬운 대책이 있지만 지금까지 거의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던 급탕 부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온수의 양과 질 자체는 낮추기 어렵지만 열회수 기술을 통해서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은 굉장히 큰 폭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일전에도 열회수배수기술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었지만 조만간 새로운 정보들을 찾아 정리해보겠습니다.

IEA 16개국 단위면적당 난방에너지 소비량 비교, 2000-2017 (단위: GJ/m²)
IEA, Energy intensity per floor area of residential space heating in selected IEA countries, 2000-2017, IEA, Paris

난방 에너지의 효율은 단위면적당 난방에너지 소비량 지표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2000년과 2017년을 비교한 국가별 단위 면적당 난방에너지 소비량 그래프를 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당한 개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을 위해 일찍부터 노력을 기울여 왔던 독일과 영국에서는 30%가 넘는 향상이 있었고, 한국도 비교적 나쁘지 않을 정도의 개선이 있었군요. 하지만 현재의 발전된 파시브하우스 기술에 비추어 본다면 더 큰 폭의 향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산업과 서비스 분야

<그림 8> IEA 16개국 제조 분야 부문별 최종 에너지 소비 비중 (2017)
IEA, Manufacturing energy consumption by subsector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4에서 재인용)

IEA 16개국의 제조 분야에서 가장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부문은 금속(26%), 화학(23%), 제지와 인쇄(13%), 식품과 담배(10%) 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부가가치면에서는 기계(34%), 운송장비(15%), 화학(13%) 순서라는 것입니다. 금속 부문은 에너지는 많이 소비하지만 부가가치면에서 크게 뒤지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금속 부문이 최대인 한국은 고민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림 10> IEA 16개국 제조 및 서비스 분야의 부문별 단위 부가가치당 에너지 소비량 비교 (2017)
IEA, Manufacturing and services: selected intensities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4에서 재인용)

산업 부문별 에너지 집약도는 단위 부가가치당 에너지 소비량으로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미화 1달러의 부가가치당 요구되는 에너지량을 비교해 보면 금속과 제지 및 인쇄, 비금속 부문이 단연 높고 기계와 서비스는 매우 낮습니다. 앞의 산업 중심의 구조를 가진 나라가 기후위기 대응에 불리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EA 16개국 국가별 제조 분야 에너지 집약도(단위부가가치당 에너지 소비량) 비교 (2017) (단위: MJ/2010 USD PPP)
IEA, Energy intensity of manufacturing in selected IEA countries, 2000-2017, IEA, Paris ty-of-manufacturing-in-selected-iea-countries-2000-2017

금속과 화학 산업의 비중이 큰 한국은 제조 분야 전체의 에너지 집약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우려했는데 막상 IEA 자료의 결과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입니다. 2000년에 비해 2017년 현재는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물론 농업이나 임업 등의 1차 산업 중심 나라들에 비하면 낮은 편이지만 제조나 서비스 비중이 큰 나라들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에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운송 분야

<그림 12> IEA 16개국 운송 분야 부문별 최종에너지 소비 비중 (2017)
IEA, Energy consumption in transport in selected IEA countries, 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5에서 재인용)

IEA 16개국의 운송 분야에서는 도로 운송이 88%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문별로는 승용차가 59%, 도로화물운송이 27%, 국내항공운송이 8%(국제항공운송은 집계에서 제외) 순으로 비중이 높습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철도나 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 가량으로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그림 14> IEA 국가별 여객 운송 한 사람-단위거리당 에너지 소비량 비교 (2017) (단위: MJ/person·km)
IEA, Energy intensity of passenger transport in selected IEA countries, 2000-2017,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5에서 재인용)

여객 분야 에너지 효율은 한 사람-단위거리당 에너지 소비량으로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여객 운송의 에너지 집약도라고 합니다. <그림 14>는 나라별로 여객 운송의 에너지 집약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2000년에 비해 꽤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에너지 집약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높은 승용차 이용 빈도, SUV와 같은 대형 승용차량의 과다 비중, 그리고 잦은 국내 항공 이용 등의 복합적인 결과라고 IEA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집약도는 여느 나라와 달리 2000년도에 비해 개선되지 않고 도리어 악화되었는데 이 역시 미국과 비슷한 이유라 짐작됩니다.

여객 운송의 에너지 집약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철도 이용을 늘리고 항공 이용을 줄이는 한편, SUV 등 대형 차량을 선호하는 문화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또 기술 혁신을 통해서 많은 나라에서 집약도가 낮아졌지만 1인 승차 승용차가 느는 등 차량당 승객 점유율이 낮아지는 현상이 집약도를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대중교통의 분담율을 높이는 등의 노력 역시 중요합니다.

전 분야 에너지 효율성 동향

그간 분야를 막론하고 에너지 효율이 향상되어 왔습니다. IEA는 가입국 전체로 볼 때 그간의 에너지 효율 향상이 없었다면 2018년 현재 20% 가량의 최종에너지를 더 소비했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덕분에 인도가 한 해 동안 사용하는 만큼의 최종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림 16> IEA 가입국에서 에너지 효율 향상으로 절감된 에너지 비용 및 비율(추정치) 2000-2018
IEA, Estimated expenditure savings in IEA member countries, 2000-2018,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6에서 재인용)

이러한 효율성 향상은 비용 절감으로도 귀결됩니다. IEA는 가입국 전체가 에너지 효율성 향상 덕분에 15% 이상의, 달리 표현해 미화 6천억 달러의 추가 에너지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서는 산업과 서비스 분야의 비용 절감액이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림 17> IEA 최종에너지 사용량 풀이
IEA, Decomposition of IEA member countries energy use, 2009-2018, IEA, Paris
(IEA, Energy efficiency indicators 2019 highlights (PDF)문서 p.6에서 재인용)

그러나 에너지 효율 향상의 결과는 활동의 증대와 구조적 요인들 때문에 크게 상쇄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 물류의 확대, 인구 증가와 기후 변화 등이 각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을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량을 키우는 구조적인 요인들도 많습니다. 건물 소요 면적의 증가, 보유 가전 제품 증가, SUV와 같이 크고 효율 낮은 차량 소유 증가, 차량당 승객 점유율 축소 등이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에너지 효율 향상에도 불구하고 실제 최종에너지 소비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너지 효율 개선이 오히려 에너지 소비를 더 유발한다는 “제본스(Jevons)의 역설”은 에너지 효율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림 17>은 그러한 점을 재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이상 IEA의 가입국 일반의 동향에 대한 보고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석]

[1] 홈페이지 올라 있는 <에너지 효율 지표 2020> 2020년 6월판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제공되고 있는 <에너지 효율 지표 2019 하이라이트>는 일부 업데이트된 데이터를 빼면 동일한 내용입니다. (→ 본문으로)

[2] 분야별 에너지 사용량 및 비중과 에너지 효율 동향 분석은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한 다음의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했다고 합니다. 호주, 벨기에, 캐나다, 체코, 핀란드,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일본, 한국, 룩셈부르크, 뉴질랜드, 스페인, 영국, 미국. 이 16개국의 2017년 최종에너지 소비량은 IEA 가입국 전체의 86%에 해당합니다. (→ 본문으로)

[3] 최종에너지(final energy)는 에너지 사용처로 공급된 에너지를 말합니다. 화석연료 전기에너지와 같이 화석연료 안의 화학적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한 뒤 이를 다시 운동에너지로 변환하여 최종적으로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경우 전기에너지 생산에 투입된 화석연료를 1차에너지(primary energy)라 하고 변환의 최종 형태인 전기에너지를 최종에너지라 합니다. 이 변환 과정에서 1차에너지의 대략 3~40%만이 전기에너지로 변환되고 나머지는 열에너지로 손실되기 때문에 최종에너지의 사용량을 실제 투입된 1차에너지로 환산하기 위해서는 국가별 1차에너지 환산계수(primary energy factor)를 반영해야 합니다. 한국의 전기에너지에 대한 1차에너지 환산계수는 2.75입니다. (→ 본문으로)

파시브하우스, 기후 보호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1)



지난 9월 20일부터 10월 8일까지 3주간 제24회 세계 파시브하우스 대회(the 24th International Passive House Conference)가 온라인상에서 열렸습니다. 온라인에서 열린 것은 최초였습니다. 파시브기술연구소는 이 대회에 참여하여 여러 발표들을 경청하였습니다. 대회가 마무리된 지는 다소간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미처 소화하지 못한 내용을 반추하기도 할 겸해서 이번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발표된 내용 중 중요한 것들을 추려 하나하나 정리, 소개합니다.


대회가 개막된 9월 20일에는 개막 본회의(opening plenary)가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의 볼프강 파이스트(Wolfgang Feist) 박사가 개막 기조 연설을 하였습니다. 파시브하우스 개념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범위의 파시브하우스 운동을 30년째 이끌고 있는 파이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늘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이스트 박사의 24회 세계 파시브하우스 대회 기조 연설 내용을 간추려 옮겨보겠습니다.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파이스트 박사는 파시브하우스[1]의 좋은 점은 기후 보호를 포함하여 아래와 같이 10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파시브하우스가 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바가 매우 넓고도 깊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기후 보호
  • 건강한 생활 환경
  • 쾌적한 주거 공간
  • 구조 보호
  • 저렴한 주택 공급
  • 기후 보호 이상의 지속가능성
  • 지역내 생산과 시공
  • 사회적 조화와 평화
  • 지구적으로 공정한 분배
  • 기존 지식과 참여 존중

어떻게 파시브하우스가 이토록 광범위한 차원의 기여를 할 수 있는지 파이스트 박사의 설명을 연설과 발표문을 참고하여 하나하나 옮겨 보겠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파이스트 박사의 연설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취지를 옮기면서 일부는 간추리고 일부는 추가 설명을 덧붙인 것임을 미리 알려둡니다.


기후 보호 Climate protection

영국의 일반적인 신축 주택의 평균 난방에너지소비량과 97개 파시브하우스의 난방에너지소비량 실측 결과를 비교하여 정리한 그래프. 파시브하우스의 난방에너지 소비량은 보통 주택보다 88% 적었다. [Mitchell, R. & Natarajan, S. (2020). UK Passivhaus and the energy performance gap. Energy and Buildings, 224⑴.]

건축물을 운용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는 전세계의 총 에너지소비량의 약 40%에 달하고, 이중 가장 심대한 몫(60% 이상)이 냉대 지역의 난방에 쓰입니다. 크게 보아 전세계 에너지소비량의 30% 가까이가 난방에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시브하우스는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해 난방에너지를 10분의 1 이하로 소비합니다. 정의상, 계산상 그러할 뿐아니라 파시브하우스 표준에 따라 지은 건축물이 실제로 넷제로에 가깝게 난방에너지요구량을 줄인다는 점은 거듭해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24회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파이스트 박사가 기조 연설하는 장면 중 보통의 건축물과 저에너지하우스, 그리고 파시브하우스의 난방에너지사용량을 비교 설명하는 장면. 일반적인 건축물의 연간 난방에너지 소비량이 평균 158 kWh/(m2·yr), 저에너지주택이 평균 68 kWh/(m2·yr)인 반면 파시브하우스는 모두 평균 15 kWh/(m2·yr) 이하이다.

이처럼 파시브하우스는 건축물의 난방에너지와 냉방 등 여타의 에너지를 대대적으로 줄임으로써 기존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두고도 일반 건축물 대비 90% 가량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기후를 보호하는 데 아주 크게 이바지합니다. 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양이 극적으로 줄기 때문에 기존의 가스 난방 설비나 기름 난방 설비를 그대로 두어도 바이오매스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얻은 가스와 기름만으로 난방을 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24회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파이스트 박사가 기조 연설하는 장면 중 넷-제로(net-zero)의 구조를 설명하는 부분.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발전을 하게 되면 여름철에는 필요로 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양을 발전하는 반면, 겨울철에는 필요로 하는 에너지보다 발전량이 적은 계절별 괴리가 생긴다. 이 때문에 대차대조표상 0을 달성하는 넷-제로는 100% 재생가능에너지 시대를 열기에 불충분하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부족한 겨울철에 화석연료를 필요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겨울철에 필요로 하는 난방에너지의 양이 매우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에 바이오매스 등의 보조를 받으면 완전히 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예 난방 설비를 전기 히트펌프로 하면 히트펌프의 200~300%가 넘는 효율 덕분에 난방에 필요한 최종에너지량을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햇빛과 바람에서 얻은 재생가능전기로 손쉽게 난방을 할 수 있어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에 훨씬 유리합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통상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량과 요구량 사이의 계절간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계절간 저장 설비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난방에너지요구량이 극히 적거나 0에 가깝기 때문에 아주 적은 용량의 계절간 에너지 저장 설비나 바이오매스 등 다른 재생가능에너지원 연료의 보조만으로 완전한 재생가능에너지 살림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파시브하우스는 완전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의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생활 환경 Healthy living environment

건강한 생활 환경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실내에 곰팡이가 피지 않고 유해 기체가 없는 좋은 공기질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실내에 곰팡이가 피고 건축물의 구조가 손상되는 “병든 건축물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 현상은 보통 물방울 맺힘, 즉 결로 때문에 일어납니다. 건축물의 실내 표면 중 유달리 찬 곳이 있거나 바깥의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곳이 있으면 물방울이 맺히거나 그 주변에 습기가 차게 됩니다. 여기에 곰팡이가 피고 구조물이 차츰 썩어들어갑니다. 또 팽창 수축을 거듭하면서 손상이 생깁니다.

파시브하우스는 아주 고르게 높은 수준으로 단열을 해서 실내에 찬 표면이 생기지 않습니다. 열교를 할 수 있는 한 줄여서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부분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기밀 시공을 하기 때문에 바람이 새어들오는 틈이 없고, 충분히 환기를 하므로 실내 습도가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기도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과 건축물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들이 원천 차단되는 것입니다.

또한 파시브하우스는 열회수율이 최소 75%[2] 이상인 열회수환기장치로 기계식 환기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항상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고 묵은 공기는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자연히 미세먼지를 포함하여 실내의 유해 기체는 늘 낮은 농도를 유지하게 되고, 직접적으로 호흡의 질에 영향을 주는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바깥 공기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지역과 여건에 따라 실내에 방사성 기체인 라돈의 농도가 높은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환기를 하는 파시브하우스 안의 라돈 농도는 이런 곳에서도 기준치 이하로 낮게 유지됩니다.

파시브하우스 실내의 라돈 농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 그래프. 환기를 하는 동안 지하실, 거실, 2층의 라돈 농도가 바깥 공기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을 유지하다가 환기장치를 끈 뒤에는 바깥 공기 라돈 농도의 약 10배 이상까지 치솟는 결과를 보여준다. [Uhlig, W.-R. (2010). Radon Pollution in Passive Houses, Proceedings of the 14th International Passive House Conference.]

이러한 파시브하우스의 환기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사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학교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1명의 감염자가 있을 때 시간당 공기 교환율이 높아짐에 따라 감염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따금 창을 여는 방식의 환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기계식 환기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24회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파이스트 박사가 기조 연설하는 장면 중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과 환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 실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1) 환기를 보다 충분히 하고, 2) 환기를 해도 침방울은 여전히 튀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며, 3) 침방울이 떨어지는 표면을 닦아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거 공간의 열적 쾌적성 Residential comfot

파시브하우스 표준의 기본 접근은 적절한 외피 자재와 설비들을 선택하여 최적의 열적 쾌적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파시브하우스 연구소로부터 인증된 파시브하우스 자재들은 바깥 기온이 영하 이하로 떨어져도 실내 표면 온도가 쾌적성 조건 이상을 유지할만큼의 실내외의 온도 차이를 최대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밀 자재와 기밀 조치도 웃풍이 생기지 않도록 바깥 공기가 새어들어오는 것을 확실히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24회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파이스트 박사가 기조 연설하는 장면 중 파시브하우스 창호의 열적 쾌적성을 설명하는 부분. 실내외 온도차이가 같은 조건일 때 파시브하우스용의 3중 로이 창호의 실내 표면 온도는 실내 온도에 가깝다. 파시브하우스 외피의 실내 표면 온도는 고르게 따뜻한 수준을 유지한다.

또 굳이 인증 자재를 쓰지 않더라도 파시브하우스 계획 도구인 PHPP가 계획 과정에서 실내 표면 온도가 낮은 부분을 알려주기 때문에 계획 과정에서 쾌적성을 해칠 수 있는 자재를 적절한 것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구조 보호 Structural protection

구조 보호는 파시브하우스 개념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고단열, 기밀, 열교와 결로 방지, 내후성, 이 모든 것이 파시브하우스의 요소이자 구조 손상을 막는 구조 보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파시브하우스로 건축물을 계획하여 짓게 되면 건축물의 구조가 열적으로 스트레스를 겪는 문제, 습기와 결로로 손상되는 문제, 찬공기가 새어들어와 손상되는 문제 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가 더 오랜 기간 안정되게 보호됩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파시브하우스가 일반 건축물보다 훨씬 더 오래 간다는 말입니다.

저렴한 가격의 주택 공급 Affodable housing

파시브하우스로 집을 짓기 위한 추가 투자 비용은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 낮아지고 있다. 1991년 독일 다름슈타트 크라니히슈타인에 최초의 파시브하우스를 지을 때에는 평방미터당 300유로를 더 투자해야 파시브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지만 2017년경에는 평방미터당 40-60유로 사이의 추가 투자 비용으로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것이 가능해졌다. [Feist, W. (2018). The Passive House – a solution for affordable housing , Proceedings of the 22th International Passive House Conference.]

에너지 효율적 건축물은 가격이 적당하고 경제성 있는 수준이어야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접근하게 됩니다. 파시브하우스 개념은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파시브하우스를 만드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을 평방미터당 40~60유로 사이로 맞추자는 목표가 세심한 설계에 힘입어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점차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 10센트 가량 월 임대료 부담이 오르게 되는데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만약 저소득 세입자에게 이 금액이 문제가 된다면 1인당 최대 연 36유로 수준의 공적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 예산은 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조처는 난방 연료에 보조금을 주는 것에 비한다면 사회적으로 훨씬 책임있고 경제적으로도 탁월한 것입니다. 오늘날 평균 난방비용에 비춰본다면 난방 연료 보조금이 훨씬 더 비싸기 때문입니다.

24회 파시브하우스 대회에서 파이스트 박사가 기조 연설하는 장면 중 파시브하우스 주택의 경제성을 설명하는 부분. 파시브하우스 자재에 투자하는 비용은 절감되는 에너지 kWh당 0~6 Cent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화석연료보다 비싸지 않기 때문에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데 들어간 추가 투자 비용은 절약되는 에너지 비용으로 모두 회수되는 셈이다. 즉, 파시브하우스가 절약하는 에너지 비용으로 파시브하우를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파시브하우스가 주는 여타의 잇점은 덤으로 누리게 된다.

파시브하우스가 절감하는 에너지 비용과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데 들어가는 추가 투자 비용을 비교해 보면 절감되는 에너지 비용으로 추가 투자 비용을 감당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유럽의 경우입니다. 에너지 비용과 전기 요금이 과소 책정되어 있고, 보통의 주택 건축의 질과 비용이 유럽에 비해 많이 낮은 수준인 한국은 파시브하우스의 경제성이 아직 유럽만큼 나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저에너지주택을 짓는 데 드는 추가 비용이 파시브하우스를 짓는 추가 비용보다 더 높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절감되는 에너지 비용까지 고려한다면요.


(글이 길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앞 부분만 먼저 올리고 나머지 부분은 2편으로 올리겠습니다.)


주석

[1] 파시브하우스(Passivhaus; Passive House)는 분명한 정의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개념입니다. 아래의 조건들을 만족하는 건축물을 파시브하우스 표준을 따르는 건축물, 곧 파시브하우스라고 합니다.

  • 난방에너지
    • 연간 난방에너지요구량 ≤ 15 kWh/m²·yr 또는
    • 난방부하 ≤ 10 W/m²
  • 냉방에너지
    • 연간 냉방에너지요구량 ≤ 15 kWh/m²·yr + 해당 기후값과 해당 건물에서의 제습에너지요구량 상한값 (서울 기후 통상 18~20 kWh/m²·yr 이하)
  • 전체 일차에너지
    •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환산한 재생가능일차에너지(PER) ≤ 60 kWh/m²·yr 또는
    • 화석연료로 환산한 화석연료일차에너지(PE) ≤ 120 kWh/m²·yr (한국은 125 kWh/m²·yr)
  • 기밀 성능
    • 실내외 기압차 50 Pa일 때 시간당 실내 공기 교체율 n50 ≤ 0.6
  • 여름철 쾌적도
    • 실내 기온 25 ℃ 넘어가는 시간이 일년 중 10% 이하

위와 같은 주요 기준과 기타 더 상세한 기준들을 파시브하우스 계획 도구인 PHPP 상의 시뮬레이션으로 만족해야 비로소 파시브하우스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파시브하우스는 소수점 이하 한 자리까지 엄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개념이며, 국제적으로 그 기준이 엄격하게 합의되어 있는 건축 표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방에너지요구량이 50 kWh/m²·yr 이하인 경우까지 임의대로 패시브하우스 인증을 주는 단체가 존재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입니다. 그 결과 현재는 대충 단열이 어느 정도 잘 된 것 같으면 제멋대로 패시브하우스로 부르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이러한 건축물도 기존의 일반적인 건축물에 비해 볼 때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파시브하우스는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과학적 개념을 임의로 흔드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아 안타까움이 큽니다. (→ 본문으로)

[2] 파시브하우스 기준에서 요구하는 열회수율은 파시브하우스 연구소(Passivhaus Institut; PHI)에서 수립한 계산 방식에 따른 것으로서 열회수환기장치 업체에서 말하는 열회수율과 대략 12% 포인트 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 때문에 PHI에서 인증을 받지 않은 열회수환기장치을 쓰는 경우에는 제조사가 제시하는 성능 인증서 상의 열회수율에서 12% 포인트를 뺀 값으로 환산을 합니다. 가령 제조사 기준 75%의 열회수율을 가진 열회수환기장치의 열회수율은 63%로 셈하여 반영합니다. (→ 본문으로)

한국일보 2017-11-25자 1면에 에너지독립하우스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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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도통 글 안 올리던 블로그에 사나흘 연달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중에 한국일보 박상준 기자님이 열심히 취재해가신 내용이 토요일자 한국일보 1면에 실렸네요. 의사소통이 다소 부족해서 건축비가 취지와 다르게 소개되었고(나의 취지는 에너지독립시스템을 뺀 건축비용을 말한 것이었으나…), 에너지독립률의 추이를 보여주는 수치와 그래프가 좀 이상하게 정리된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여하튼 박상준 기자님과 선임기자이신 신상순 기자님이 잘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에너지 아나키스트”라는 새로운 용어로 소개해주신 것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머릿 속의 제 지향은 아나키즘, 자율주의이거든요~.

overBg “내가 쓸 전기 직접 만들어…난 에너지 아나키스트다”

에너지 저장 가격이 태양광과 풍력 기술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있다.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된 캘리포니아 대학과 독일 뮌헨공과대학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리튬이온전지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비용이 1990년대 초반의 킬로와트시당 1만달러($10,000/kWh)에서 2019년 킬로와트시당 100달러($100/kWh)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이 전망이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리튬이온전지 에너지저장시스템의 가격이 태양광과 풍력 발전시스템의 가격보다 더 빨리 떨어진 셈이라며 조만간 태양광, 풍력과 저장시스템의 조합이 가격면에서 석탄이나 천연가스 발전소를 추월할 것이라고도 내다 보았다.

이 연구팀은 통상의 모델이 아닌 새로운 분석 모델을 사용하였는데 비용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부의 장기 R&D 투자라고 밝혔다. 미연방의 R&D 지출은 지난 40년 사이 미국 GDP의 1.2%에서 0.8%로 줄었는데 이 때문에 연구 비용의 축소가 에너지 저장 장치의 가격 하락 추세를 둔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의 에너지 저장 기술이 다방면에서 필요할 것이고 이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하였다.